비몽.

숫자에 연연하는 것은 아니지만, 때때로 숫자는 어떤 것들을 구획짓고 의미를 부여하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한다.

서른이 넘고 나서는 하루하루가 짧게만 느껴지지만, 또한 한없이 가벼워져

쌓이는 나날만큼 내가 어디로도 가지 못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곤 한다.

20대때 내가 바라던 안온한 일상을 어느 정도 얻은 건진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는 이전처럼 이유없이 서울시내를 헤매지도 않고

조울증 환자들처럼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느라 일상에서 잠수타지도 않지만

나는 이런 내 무심함이 종종 두렵다.


'비몽'을 보러 갔었다. ...... 분당에 온 이래로 영화를 보려면 서울까지 가야 한다는 게 좀 귀찮다.

영화를 보면서 사랑이 지나간 자리에 남는 그 지독한 집착이 무서웠다.

감정은 수시로 빛이 바뀌는 풍경처럼 시시각각 변하지만,

그 감정을 이끄는 건 어쩌면 인간의 의지일지도 모른다.


영화에서, 오다기리 죠는 아닐 비, 꿈 몽자를 써놓고

다시 비자의 아래에 마음심을 더해 슬플 비자를 만든다. (이건 내 기억의 조작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정말 슬픈 건, 바늘로 찌르고 망치로 내리쳐도 저항할 수 없는 졸음처럼

우리는 꿈이 꿈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  

현실과 꿈의 경계가 우리의 생각만큼 뚜렷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하여도

좀처럼 자유로워질 수가 없다는 건지도 모른다.


 




by phorie | 2008/10/25 20:53 | 메모광백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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